2014년 추수감사절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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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추수감사절 특강
말씀 | 시편 107:1-22
요절 | 시편 107:22
감사제를 드리며 노래하라
“감사제를 드리며 노래하여 그가 행하신 일을 선포할지로다.”
오늘 말씀은 추수감사절 특강입니다. 시편 107편 말씀의 배경은 바벨론 포로에서 풀려나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에스라 1:1-3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강대국 바벨론이 메대 바사 연합군에 갑자기 패망하고 이어서 바사왕 고레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놀라운 칙령을 발표합니다. 저자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생각하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1절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께서 주신 놀라운 은혜를 기억하고 온 마음으로 감사하며 하나님을 경배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여호와께 감사하라.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가 감사할 대상은 가장 먼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그 무한하신 권능으로 천지 만물을 아름답게 창조하셨습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우주의 경이로움, 인체의 신비 속에서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는 그가 선하시며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에 우리 각자에게 선한 뜻을 두고 인도하십니다. 요9장에 보면 날때부터 맹인된 사람을 보고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이들의 마음은 어둡고 슬픕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엇이라 대답하십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맹인인 그를 통해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맹인으로 났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선하신 뜻이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각자는 여러 모양의 연약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볼 때, 부러워하면서 한편으로 자신의 약점으로 인해 슬퍼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선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팔 다리 없이 태어난 닉부이치치는 자신의 육신을 보면 얼마나 절망스러웠을까요? 하지만, 선하신 하나님께선 그의 연약한 육체를 통해서 절망 가운데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보며 절망하지만, 선하신 하나님은 그 연약함을 통해서 놀라운 일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약점 앞에서 울며 절망하지 않고 선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약함을 통해서 당신의 선하신 뜻을 드러내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그리고 선하신 하나님이 나를 통해 하실 놀라운 일을 기대하며 매일 감사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또, 우리를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인자하심, 사랑은 영원하십니다. 우리의 죄는 생각보다 깊습니다. 우리의 죄성을 잘 나타내는 말이 있습니다.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한은 돌에 새긴다." 사람들은 10번 잘해줘도 1번 잘못하면 10번 잘해준 것은 기억하지 않고 1번 잘못한 것을 기억하고 섭섭해 합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지만 우리는 금방 그 은혜를 다 잊어버립니다. 대신에 섭섭했던 1가지를 붙잡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또 배반하기를 잘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변나라들로부터 보호하셔서 살만하면 하나님을 대적하고 다시 어려움이 닥치면 하나님을 찾기를 반복하였습니다. 나라가 멸망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갈 때까지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영원합니다. 이들이 소망이 있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원한 인자하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영원하신 인자하심 때문에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롬5:7-8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간혹 의인이나 선인을 위해서 대신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죄인을 위해서 대신 죽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소망 없는 죄인을 위해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쓸모없는 죄인에게도 주님께서 놀라운 인자하심과 사랑을 보이심을 감사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온 마음으로 주님께 감사와 경배를 드립니다. 우리 JBF 학생들이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영접하고 온 마음으로 경배와 찬양을 드리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구원 받은 것으로 인해서 감사드립니다. 2, 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은 이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그들을 속량하사 동서 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모으셨도다.” 속량은 노예를 값을 치루고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원수는 우리를 노예로 삼기까지, 아니 죽기까지 붙잡아두기를 원합니다. 그 힘은 매우 강하여 우리 스스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선 이스라엘 백성들을 강력한 바벨론 제국으로부터 기적같이 구원해 내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죄의 종이요 사탄의 종으로 살면서 우리 힘으로는 사탄의 권세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불평의 세력, 불신의 세력, 어두움의 생각들을 우리 힘으로 몰아낼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 예수님의 속량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불평과 원망 대신 감사를, 불신의 생각 대신 믿음의 생각을, 절망 대신 희망을, 어두움 대신 빛의 생각으로 우리 안을 가득 채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사탄의 종이요 죄의 종으로 비참하게 살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을 항상 붙잡고 영접하며 그 은혜를 힘입어 감사의 삶, 빛으로 가득한 삶 살기를 기도합니다.
4-7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이스라엘은 출애굽한 후에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고통 가운데 여호와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건지셨고 그 길을 인도하사 성읍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은 광야 길과 같습니다. 광야 사막 길은 뜨겁고 갈증이 납니다. 가도 가도 끝이 없어 보입니다. 길이 없으니 이리저리 방황합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길을 찾아 방황합니다. 이들이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6-7절을 다시 보십시오.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게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 길을 찾지 못해서 방황할 때에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하면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가야 할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할 때에 주님은 들으시고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십니다. 거주할 성읍은 방황하는 광야 길과 대조적입니다. 거주할 성읍에 물이 있고 양식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푸른 나무와 숲이 있고 그늘 아래에서 쉼을 누릴 수 있습니다. 즐거운 노래 소리가 들리고 기쁨의 환호성이 있습니다. 선하시고 그 사랑이 영원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그에게 나아가 부르짖을 때에 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기적을 인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8,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은 기적이었습니다. 그들이 돌아와서 성전과 성벽을 재건한 일들도 기적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나의 힘으로는 기대할 수 없는 일들이 성취되는 기적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잘 것 없는 일을 베푸시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지혜와 권능을 행하시며, 그분을 찾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기적을 베푸십니다. 삶에서 기적을 보고 깨닫는 사람의 입에서는 찬양 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기적은 나의 형편이나 조건과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이 하시는 기적을 볼 수 있습니까? 나사로가 죽은 지 4일이나 되어 썩어서 냄새가 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무덤 문을 열라 하였습니다. 주저하는 마르다에게 예수님은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 하였느냐" 말씀하셨고 무덤 문을 믿음으로 열었을 때 나사로가 살아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기이한 일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삶에 하나님의 기이한 기적이 없는 것은 우리가 믿음과 순종을 드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놀라운 일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찾는 자들에게 상을 주십니다. 성경에는 믿음을 드린 사람들에게 나타난 놀라운 기적들이 가득합니다. 오늘날도 동일한 믿음을 드리는 사람들에게 동일한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지난 번 수양회에서 김효성 대표의 간증을 통해서 이를 잘 볼 수 있었습니다. 또 이희돈 장로님의 간증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잘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믿는 자들을 위해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기적을 행하시며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는 주 하나님께 감사와 경배를 드립니다.
넷째,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10,11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계속해서 앉아 있는 사람은 자신이 왜 이렇게 고생을 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막으시면 그 길을 멈추고 가지 말아야 합니다. 멈추어 서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 다시 살펴보고 방향전환을 해야 합니다. 고난을 통해서 마음을 낮추고 겸손하게 주님께 구하면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이에 그들이 그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들의 얽어 맨 줄을 끊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나를 얽어매고 있는 줄을 끊어 주십니다. 그는 놋문을 깨뜨리시며 쇠빗장을 꺾으셔서 갇힌 자를 구출해 내십니다.
우리 죄인들은 미련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고도 쉽게 죄에 넘어집니다. 고난의 때에 하나님을 찾다가 주님의 도움을 입어 상황이 나아지면 하나님을 떠나기를 잘하는 소망없는 자들입니다. 이런 어리석은 인생들이 구원을 받는 길이 있습니다. 곧 여호와께 부르짖어 회개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19-20절을 보십시오.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고통의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십니다. 약속의 말씀으로 우리를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줍니까? 고난의 때에 기도를 하지만 이와 함께 말씀을 열심히 묵상해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구약, 신약은 약속이며 또 치료 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치료가 이루어 지며 구원이 임하며 기적이 나타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이 배를 타고 로마로 압송되는 중에 큰 풍랑을 만납니다. 배가 침몰하기 직전까지 갔습니다.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 속에서 먹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절망의 순간에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행27:21-25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바울은 절망의 순간에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고 그 약속을 의지하여 사람들을 도왔고 결국 모두 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그는 두려움에서 자유롭게 되었고 위기의 순간을 지혜롭게 대처하며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위기의 때에 말씀을 보내셔서 그 말씀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므로 위기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 살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2절을 보겠습니다. “감사제를 드리며 노래하여 그가 행하신 일을 선포할지로다.” 우리를 십자가에서 자기 목숨을 희생해서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감사제를 드립시다. 인생의 광야 길에서 나의 목자가 되어 주시고 부르짖을 때에 기도에 응답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제를 드립시다. 말씀이 없어 기갈 든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고 때마다 말씀을 보내시어 배부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제를 드립시다.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하는 삶 살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 시편 107:1-22
요절 | 시편 107:22
감사제를 드리며 노래하라
“감사제를 드리며 노래하여 그가 행하신 일을 선포할지로다.”
오늘 말씀은 추수감사절 특강입니다. 시편 107편 말씀의 배경은 바벨론 포로에서 풀려나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에스라 1:1-3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강대국 바벨론이 메대 바사 연합군에 갑자기 패망하고 이어서 바사왕 고레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놀라운 칙령을 발표합니다. 저자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생각하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1절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께서 주신 놀라운 은혜를 기억하고 온 마음으로 감사하며 하나님을 경배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 여호와께 감사하라.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가 감사할 대상은 가장 먼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그 무한하신 권능으로 천지 만물을 아름답게 창조하셨습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우주의 경이로움, 인체의 신비 속에서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는 그가 선하시며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에 우리 각자에게 선한 뜻을 두고 인도하십니다. 요9장에 보면 날때부터 맹인된 사람을 보고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이들의 마음은 어둡고 슬픕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엇이라 대답하십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맹인인 그를 통해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맹인으로 났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선하신 뜻이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각자는 여러 모양의 연약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볼 때, 부러워하면서 한편으로 자신의 약점으로 인해 슬퍼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선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팔 다리 없이 태어난 닉부이치치는 자신의 육신을 보면 얼마나 절망스러웠을까요? 하지만, 선하신 하나님께선 그의 연약한 육체를 통해서 절망 가운데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보며 절망하지만, 선하신 하나님은 그 연약함을 통해서 놀라운 일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약점 앞에서 울며 절망하지 않고 선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약함을 통해서 당신의 선하신 뜻을 드러내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그리고 선하신 하나님이 나를 통해 하실 놀라운 일을 기대하며 매일 감사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또, 우리를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인자하심, 사랑은 영원하십니다. 우리의 죄는 생각보다 깊습니다. 우리의 죄성을 잘 나타내는 말이 있습니다.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한은 돌에 새긴다." 사람들은 10번 잘해줘도 1번 잘못하면 10번 잘해준 것은 기억하지 않고 1번 잘못한 것을 기억하고 섭섭해 합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지만 우리는 금방 그 은혜를 다 잊어버립니다. 대신에 섭섭했던 1가지를 붙잡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또 배반하기를 잘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변나라들로부터 보호하셔서 살만하면 하나님을 대적하고 다시 어려움이 닥치면 하나님을 찾기를 반복하였습니다. 나라가 멸망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갈 때까지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영원합니다. 이들이 소망이 있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원한 인자하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영원하신 인자하심 때문에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롬5:7-8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간혹 의인이나 선인을 위해서 대신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죄인을 위해서 대신 죽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소망 없는 죄인을 위해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쓸모없는 죄인에게도 주님께서 놀라운 인자하심과 사랑을 보이심을 감사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온 마음으로 주님께 감사와 경배를 드립니다. 우리 JBF 학생들이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영접하고 온 마음으로 경배와 찬양을 드리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구원 받은 것으로 인해서 감사드립니다. 2, 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은 이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그들을 속량하사 동서 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모으셨도다.” 속량은 노예를 값을 치루고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원수는 우리를 노예로 삼기까지, 아니 죽기까지 붙잡아두기를 원합니다. 그 힘은 매우 강하여 우리 스스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선 이스라엘 백성들을 강력한 바벨론 제국으로부터 기적같이 구원해 내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죄의 종이요 사탄의 종으로 살면서 우리 힘으로는 사탄의 권세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불평의 세력, 불신의 세력, 어두움의 생각들을 우리 힘으로 몰아낼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 예수님의 속량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불평과 원망 대신 감사를, 불신의 생각 대신 믿음의 생각을, 절망 대신 희망을, 어두움 대신 빛의 생각으로 우리 안을 가득 채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사탄의 종이요 죄의 종으로 비참하게 살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을 항상 붙잡고 영접하며 그 은혜를 힘입어 감사의 삶, 빛으로 가득한 삶 살기를 기도합니다.
4-7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이스라엘은 출애굽한 후에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고통 가운데 여호와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건지셨고 그 길을 인도하사 성읍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은 광야 길과 같습니다. 광야 사막 길은 뜨겁고 갈증이 납니다. 가도 가도 끝이 없어 보입니다. 길이 없으니 이리저리 방황합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길을 찾아 방황합니다. 이들이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6-7절을 다시 보십시오.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게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 길을 찾지 못해서 방황할 때에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하면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가야 할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할 때에 주님은 들으시고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십니다. 거주할 성읍은 방황하는 광야 길과 대조적입니다. 거주할 성읍에 물이 있고 양식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푸른 나무와 숲이 있고 그늘 아래에서 쉼을 누릴 수 있습니다. 즐거운 노래 소리가 들리고 기쁨의 환호성이 있습니다. 선하시고 그 사랑이 영원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그에게 나아가 부르짖을 때에 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기적을 인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8,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은 기적이었습니다. 그들이 돌아와서 성전과 성벽을 재건한 일들도 기적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나의 힘으로는 기대할 수 없는 일들이 성취되는 기적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잘 것 없는 일을 베푸시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지혜와 권능을 행하시며, 그분을 찾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기적을 베푸십니다. 삶에서 기적을 보고 깨닫는 사람의 입에서는 찬양 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기적은 나의 형편이나 조건과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이 하시는 기적을 볼 수 있습니까? 나사로가 죽은 지 4일이나 되어 썩어서 냄새가 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무덤 문을 열라 하였습니다. 주저하는 마르다에게 예수님은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 하였느냐" 말씀하셨고 무덤 문을 믿음으로 열었을 때 나사로가 살아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기이한 일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삶에 하나님의 기이한 기적이 없는 것은 우리가 믿음과 순종을 드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놀라운 일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찾는 자들에게 상을 주십니다. 성경에는 믿음을 드린 사람들에게 나타난 놀라운 기적들이 가득합니다. 오늘날도 동일한 믿음을 드리는 사람들에게 동일한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지난 번 수양회에서 김효성 대표의 간증을 통해서 이를 잘 볼 수 있었습니다. 또 이희돈 장로님의 간증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잘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믿는 자들을 위해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기적을 행하시며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는 주 하나님께 감사와 경배를 드립니다.
넷째,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10,11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계속해서 앉아 있는 사람은 자신이 왜 이렇게 고생을 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막으시면 그 길을 멈추고 가지 말아야 합니다. 멈추어 서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 다시 살펴보고 방향전환을 해야 합니다. 고난을 통해서 마음을 낮추고 겸손하게 주님께 구하면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이에 그들이 그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들의 얽어 맨 줄을 끊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나를 얽어매고 있는 줄을 끊어 주십니다. 그는 놋문을 깨뜨리시며 쇠빗장을 꺾으셔서 갇힌 자를 구출해 내십니다.
우리 죄인들은 미련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고도 쉽게 죄에 넘어집니다. 고난의 때에 하나님을 찾다가 주님의 도움을 입어 상황이 나아지면 하나님을 떠나기를 잘하는 소망없는 자들입니다. 이런 어리석은 인생들이 구원을 받는 길이 있습니다. 곧 여호와께 부르짖어 회개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19-20절을 보십시오.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고통의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십니다. 약속의 말씀으로 우리를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줍니까? 고난의 때에 기도를 하지만 이와 함께 말씀을 열심히 묵상해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구약, 신약은 약속이며 또 치료 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치료가 이루어 지며 구원이 임하며 기적이 나타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이 배를 타고 로마로 압송되는 중에 큰 풍랑을 만납니다. 배가 침몰하기 직전까지 갔습니다.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 속에서 먹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절망의 순간에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행27:21-25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바울은 절망의 순간에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고 그 약속을 의지하여 사람들을 도왔고 결국 모두 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그는 두려움에서 자유롭게 되었고 위기의 순간을 지혜롭게 대처하며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위기의 때에 말씀을 보내셔서 그 말씀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므로 위기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 살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22절을 보겠습니다. “감사제를 드리며 노래하여 그가 행하신 일을 선포할지로다.” 우리를 십자가에서 자기 목숨을 희생해서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감사제를 드립시다. 인생의 광야 길에서 나의 목자가 되어 주시고 부르짖을 때에 기도에 응답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제를 드립시다. 말씀이 없어 기갈 든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고 때마다 말씀을 보내시어 배부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제를 드립시다.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하는 삶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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