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년 유럽 각나라 개척 역사 보고(조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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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유럽 국제수양회 보고 (현지목자 인생소감, 유럽 각국 미션리포트, 개척지부방문)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8:31,32)
저는 수양회 기간 있었던 현지목자 인생소감과 유럽 각국 미션보고 및 수양회 후 투어 및 지부심방에 대해서 보고드리겠습니다.
1. 인생소감 발표
수양회 둘째날 저녁부터 유럽 각국 선교사님들의 헌신의 열매로 맺은 7명의 현지 형제 자매들의 감동적인 인생소감 발표가 있었습니다. 저녁강의로 영국 런던 UBF 폴 리지 목자님이 전한 눅 19장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 메시지 후에 발표된 이들의 소감은 잃어버린 자를 찾으시는 우리 주님의 구원의 은혜로 충만하였습니다.
첫째로 발표한 크리스토프 비어트 형제님은 하이델베르그 대학 인류학과 3학년입니다. 연희센타에서 하이델베르그로 파송되신 수잔나송 선교사님이 2003년 봄 대학에 입학 등록을 마친 그를 만나 성경공부에 초청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성경을 배우면서도 하나님 안에 있는 평강은 원하였으나 믿음의 삶은 결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곧 한 자매와의 정욕에 빠졌고 막연한 장래염려에 사로잡혀 오랫동안 방황하였습니다. 그러나 수잔나송 선교사님은 낙망치 않고 그를 기도하며 일대일로 섬겨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05년 하이델베르그센터 봄 수양회에 참석하여 마가복음 15장을 공부하며 예수님이 자신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을 믿고 죄사함과 영생의 은혜를 얻었습니다. 이후 주일예배와 새벽기도를 꾸준히 참석하며 주위 친구들에게 예수님을 증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훈련받지 못한 제자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키우셔서 좋은 성경선생이요 선한 목자로 써주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세 번째로 발표한 토비아스 목자님은 칼스루헤 센타의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는 1978년생으로 스포츠에 뛰어나 육상 경기 대회에서 우승, 신문에 나기도 하여 이를 자랑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부끄러워하였습니다. 칼스루헤 대학 지구물리학과에 입학하였으나 정욕에 시달렸고 인생의 무의미와 공허감으로 고통했습니다. 한편으로 날마다 성경을 읽는 착한 청년처럼 보였으나 내면은 음란과 남에게 무관심한 차가운 마음을 가진 타락한 인간이었습니다. 대학 입학 전 현대의술로 고칠 수 없는 심각한 실명증 눈병을 진단받았고 의사는 긍게 대학공부를 그만두도록 권고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자신의 인생이 침몰해가는 녹슨 난파선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는 인생의 무의미로 절망할 때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은 소원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못하였고 무엇을 해야 할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때 학생식당에서 에스더김 선교사님을 만나 예배에 초청받았습니다. 제임스김 선교사님과 일대일 성경공부를 하던 중 인생의 근본 문제가 죄문제임을 깨달게 되었습니다. 3년전 처음 참석한 유럽국제수양회에서 주님의 말씀은 죄악의 안개들 속으로 비쳐내리는 찬란한 빛으로 다가왔고 엡4:17절 말씀을 통해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의 삶을 출발하였습니다. 과거 그는 지금 몇시냐고 물어볼 용기조차 없었던 소심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나 계시록 2:3-5절 말씀 앞에서 회개하였을 때 자기를 극복할 수 있었고 떨리는 다리로 두시간 동안 피싱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를 축복하시고 학문에서 크게 승리하여 졸업시험을 올A+로 통과하고 박사과정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후 잠시 열정을 잃고 음란한 소원에 시달렸으나 제임스김 선교사님이 눅13:24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말씀으로 도왔을 때 깊이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회개를 받으시고 안드레아스 형제님을 맡겨주시며 지난 1년반 동안 일대일로 양육하며 목자요 성경선생으로 쓰임받게 하여 주셨습니다. 토비아스 목자님은 제임스김 선교사님과 일대일 성경공부를 한 후 그것을 기초로 다시 일대일 교제를 만들어 안드레아스 형제님을 섬기는 선한 목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소망을 온전히 하나님 나라에 두고 오직 예수님을 섬기는 축복된 삶을 살기를 소원하였습니다.
그 외 독일 프라이부르크 센타 야로슬로브 스토르챡 자매님, 본 센타 마틴 슈렉 형제님, 마인쯔 센타 바바라 리 목자님, 시카고 센타 마이클 스타츠 형제님이 인생소감을 발표하였습니다. 이들 일곱명의 현지 목자들은 우리 선교사님들이 잃어버린 자를 찾으러 오신 예수님의 사랑과 심정으로 낙망치 않고 인내하며 섬긴 믿음의 열매들이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잃어버린 자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오는 은혜의 역사보고는 유럽 각국 캠퍼스 가운데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비젼으로 충만하게 하였습니다.
2. 유럽 각국 개척 역사보고
셋째날 마르크스 아벨 목자님이 전하신 마28장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메시지 후 세계 선교의 밤에는 유럽 각국 미션리포트 발표가 있었습니다. 먼저 영국과 아일랜드 선교보고는 중절모에 신사복을 입고 지팡이를 잡은 전형적인 영국신사의 복장을 하고 나온 런던 UBF 대런 힐트로 목자가 전하였습니다. 그는 과거 긴 파마머리에 커다란 안경을 쓰고 나팔바지를 입고 다니던 패션의 희생자였다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처음 이안 케어 목자님은 그를 만났을 때 전혀 성경을 공부할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아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노신사 한 분이 말하기를 저 사람이야말로 성경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하여 성경공부에 초청하였는데 그 분이 바로 이안 케어의 아버지인 스탠리 케어였습니다. 대런 목자는 윌리엄 캐리의 사역을 기초로 현재 영국 UBF 선교역사를 전하였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자세였습니다. 지부장 윤모세 선교사님도 항상 성경공부와 진실된 소감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리더들이 이에 순종하였을때 매주 40팀의 일대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전하였습니다. 둘째는 현지 리더양성입니다. 윤모세 목자님은 현지 리더들에게 조금씩 책임을 넘겨주어서 지금은 이안, 폴 목자들이 책임자로 성장하였습니다. 셋째는 사랑의 동역입니다. 런던 UBF는 10개국에서 온 동역자들이 함께 사역하고 있어 항상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센타청소 모임, 기도모임, 토요일 축구시합, 영국역사 공부 등 다양한 모임을 만들어 동역과 사랑을 배우고 있습니다. 윌리엄 캐리는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위대한 일을 기대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 영국 UBF의 주요 기도제목은 2025년까지 만명의 성경선생을 세우고 100개 캠퍼스를 개척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프랑스와 벨기에 선교보고는 러시아 태생인 파리 UBF 바바라 니꼴 목자가 전하였습니다. 그는 부드러운 프랑스어를 마치 러시아를 구사하듯 힘있고 절도있는 억양으로 구사하여 웃음을 자아내었습니다. 벨기에는 2004년 끌라라 김 선교사님이 학생신분으로 국적 취득이 불가능한 가운데 벨기에 국적을 얻는 믿음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클라라 선교사님은 여러 해 동안 사랑스런 딸 마리를 혼자 키우며 한국에 가 있었던 남편 갈렙 선교사와 떨어져 살아야 하는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가정을 축복하사 다시 합류하게 하셨고 클라라 선교사님이 벨기에에서 음악 선생님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라리 선교사님은 가정을 섬기기 위해 13년을 일하였습니다. 그 덕분에 여호수아리 선교사는 벨기에 역사를 위해 영적 문화적 기초를 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회계학을 공부하는데 성공하였고 2004년부터 그의 가정을 써포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라리 선교사님은 이제 영적 쉼을 갖고 매일 캠퍼스에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작년에 벨기에 선교사들은 선교 영역을 넓히기 위해 벨기에의 두번째 공식언어인 독어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벨기에 센터의 간절한 기도제목은 한 사람의 믿음의 조상을 세우는 것입니다.
포르투칼은 강렬한 태양과 맛좋은 포도주와 금빛 해변으로 유명합니다. 조상들은 17세기 세계의 절반 이상을 정복한 열강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포르투갈은 유럽 연합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로 전락했습니다. 15년전에 하나님께서는 복음 역사를 위해 마태싱 선교사 한 사람을 리스본대 유학생 선교사로 보내셨습니다. 그는 인도 지미리 선교사님의 수제자중 한 사람으로 인도 명문 델리대학 출신입니다. 그는 처음 포르투갈에 왔을 때 “개척 역사 이거 별거 아니네 몇 년 안에 큰 역사를 섬길수 있겠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로 리스본대 장학금을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성경공부하던 양들도 하나 둘씩 다 떠나갔습니다. 그는 거주할 곳도 먹을 음식도 없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인도로 돌아가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히12:2절 “믿음의 주요 또한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말씀 앞에서 회개하고 예수님을 바라보고자 결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안정된 직장과 영구체류의 길을 열어주셨을 뿐만아니라 레베카 선교사님과 믿음의 가정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2001년도에 허요한 선교사 가정을 선교 동역자로 보내어 주셨습니다. 2004년도에는 몇몇 신실한 양들을 보내어 주셨고 개척후 처음으로 허그레이스 선교사님을 통해 페르난도 형제가 유럽 국제수양회에 참석하는 큰 승리를 주셨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포르투칼 선교사님들에게 78개 포르투칼 대학 캠퍼스와 8개 포어권 나라들을 개척할 수 있는 비젼을 주셨습니다. 포르투갈 센터의 기도제목은 12팀 일대일 성경공부와 아브라함과 사라같은 믿음의 조상과 기도의 어미를 세워주시도록 또한 2010년까지 120명의 주일예배 참석을 이뤄주시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동구 유럽과 노르웨이 스웨덴 개척 역사보고에 이어 마지막으로 블라디미르 포인트 목자님이 터어키 개척역사를 보고하였습니다. 그는 모슬렘 국가에서 목숨을 걸고 개척역사를 섬기는 선교사답게 스피릿있고 힘찬 목소리로 보고하였습니다. 그는 본래 슬로바키아 개척 비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터어키 개척 방향이 떨어졌습니다. 그는 당시 순종하기 매우 힘든 4가지 조건이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첫째 터어키는 모슬렘 국가이고 둘째 그가 터어키에 가면 보스포러스대에서 지난 5년간 한번도 공부하지 않는 물리학을 공부해야 했으며 셋째 그의 동역자가 터어키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고 둘째 딸을 임신중이었으며 넷째 방금 우크라이나에 새집을 짓고 내부 인테리어 공사만 남았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가정을 크게 축복하시리라는 믿음으로 순종하였고 단신으로 올해 초 이스탄불에 선교사로 파송되었습니다. 난방이 되지 않는 춥고 허름한 장막을 구하여 센타로 겸용하며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많은 양들을 초청했으나 3개월간 예배에 나온 양들은 단 2명뿐 그것도 한번씩이었습니다. 신실하게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자신과 난로뿐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날마다 3명의 제자양성과 학문정복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처음에는 터어키어에다가 대입을 위해 영어까지 배워야 하므로 언어가 온통 뒤죽박죽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시고 GRE시험에서 매우 높은 점수를 허락하셨습니다. 3명의 제자를 위한 기도도 응답하시고 태머 형제가 처음으로 규칙적인 성경공부를 시작하였고 니콜라이 형제가 지난 6월 이후 매주 예배에 신실히 참석하였습니다. 그는 성경공부를 통해 운명주의로부터 자유함을 얻었고 담배와 마약도 끊었습니다. 포인트 목자님과 장막생활을 같이 하며 국제수양회도 참석하였습니다. 그외 세닷 형제를 제자로 얻었고 한명의 터키 자매를 개종하였습니다. 무엇보다 동역자와 두 딸이 왔는데 이제 동역자는 터어키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 기적이 일어났다며 감사하였습니다. 포인트 목자는 예수님을 만나기전 미치광이 록 음악가였으며 사마리탄 남자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는 터어키 청년들을 생각할 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만난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가 깨달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가 터어키에 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이 땅에서 찬양되어지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새 집을 열두 제자를 양성하는 두란노 서원이 되기를 기도한다고 하였습니다.
3. 독일 투어
은혜와 비젼이 충만한 유럽 수양회가 끝나고 각국 져니팀은 대형버스 2대에 나누어 타고 먼저 동서독 통일 후 수도가 된 베를린을 방문했습니다. 4시간의 여정 동안 말로만 듣던 아우토반을 볼 수 있었고 시속 200Km로 달리는 차도 보았습니다. 좌우로 펼쳐지는 독일은 어디를 가나 마치 달력에 있는 그림을 보는 듯 고풍스럽고 아름다웠고 깨끗하였습니다. 마치 달력만 보다 온 기분이었습니다. 주님은 져니팀들을 축복하셔서 가는 곳마다 비를 그치게 하시고 좋은 날씨를 주셨습니다. 좌우로 펼쳐지는 독일의 농촌은 드넓었고 희어져 추수하게 된 밀밭을 그냥 방치한 곳이 자주 눈에 띄었습니다. 마치 희어져 추수하게 된 독일 캠퍼스에 추수할 일군이 심히 모자라는 것을 연상케 하였습니다. 베를린과 포츠담을 거쳐 마르틴 루터가 주로 활동했던 비텐베르그로 향했습니다. 다음날 화요일 아침에는 루터가 교황청의 가혹한 핍박을 피하여 10개월간 은신하며 전심전력으로 신약성경을 번역한 바르텐부억 요새를 방문하였습니다. 루터는 그곳 2평 남짓한 좁은 방에서 골리앗과 같은 교황청의 위협에 맞서서 죽음을 무릎쓰고 영적인 투쟁을 하며 성경을 번역하였습니다. 혼신의 힘을 다하여 번역한 성경으로 인해 세상 만민들이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역사를 들으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정말 한 사람이 만군의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 불신의 시대에 도전할 때 얼마나 위대한 역사를 이룰 수 있는가 볼 수 있었습니다.
4. 은혜 충만한 지부심방
감동적인 마르틴 루터 유적 답사를 마치고 연희 져니팀들은 고대하던 개척센터 방문길에 올랐습니다. 5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쾰른 센타에 방문하였을 때 선교사님들은 풍성한 한국음식으로 저녁 뷔페를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다음날 아침 쾰른 2부 홀에서 한국 져니팀들이 영어로 인생소감을 발표하였고 안드레아스 크라빙켈 목자님이 쾰른 2부 소개하고 기도제목을 말씀하셨습니다. 쾰른2부는 현재 같은 위치에 있는 쾰른 사대와 쾰른 임상교육대를 개척하고 있고 각각 4,000명의 학생들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가운데 20팀의 일대일과 12명의 학생들이 예배 참석, 12명의 사도와 12명의 기도의 어미가 서도록 또 캠퍼스 근처에 합당한 바이블센타를 구하도록 기도제목을 제시하였습니다. 합심기도 후에 지미리 마리아리 선교사님과 함께 쾰른대와 쾰른사대 캠퍼스를 심방하고 기도하였습니다. 이어 칼스루헤를 심방하였습니다. 마르쿠스 선교사님과 직장일로 바쁘신 유다니엘 선교사님이 이틀씩이나 휴가를 내어 져니팀을 자가용으로 태워다 주셨습니다. 아름다운 코브렌츠와 로렐라이 언덕을 거쳐 때로 시속 180Km를 달리며 아름다운 도시 칼스루헤에 도착했을 때 선교사님들은 한 유스호스텔의 조그만 강당을 빌려놓았고 야외 바베큐 한식 부페로 풍성한 저녁을 섬겨주셨습니다. 하이델베르그 만하임에서 오신 선교사님들과 포르투갈 선교사님들이 한국 져니팀들과 교제하고 인생소감을 듣기 위해 다 모여있었습니다. 토비아스 목자님과 그의 양인 안드레아스 형제님이 식탁을 펴고 수저와 음식을 나르는 일을 적극적으로 섬기는 모습이 아름다웠고 감사하였습니다. 풍성한 식사 후에 토비야스 목자님의 사회로 한국 져니팀들이 영어로 인생소감을 발표하였습니다. 2년반 만에 노동허가서를 얻어 일약 유명해진 강그레이스 선교사님과 아빠가 수양회 가있는 동안 주일예배 메시지를 섬긴 주니어 제임스와 요한이 아름다운 특주를 섬겼습니다. 이튿날 새벽 선교사님들과 축구펠로쉽을 가진 후 칼스루헤 대학을 심방하고 합심 기도하였습니다. 과거 제후가 쓰던 성 전체를 캠퍼스로 쓰고 있었는데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칼스루헤 센타는 현재 제임스김 에스더김 선교사님 가정을 센타로 쓰고 있는데 새 센타 구입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또 토비야스 목자님이 말씀의 종으로 성장하고 매주 12팀 일대일과 12명 예배참석 12제자를 세우는 기도제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독일에 온 후로 기쁨과 감사가 충만한 백다니엘 선교사님이 헌신적으로 져니팀을 섬겨주셨고 내년 대학입학을 위해 기도를 부탁하셨습니다.
이어 유명한 하이델베르그 성을 거쳐 하이델베르그 센타를 방문하였습니다. 환영나오신 웨슬레송 수잔나송 토마스 정 카리스정 마르쿠스 아벨 마리아 아벨 선교사님들이 져니팀을 뜨겁게 영접하여 주셨습니다. 기도와 기념사진을 찍은 후 곧 만하임 센타로 갔습니다. 요하네스김 헬렌김 여호수아 H김 리베카리 선교사님이 함박웃음으로 져니팀을 영접하였습니다. 소망스러운 만하임대 4학년 올가 자매님, 미국에서 온 마이클 형제님이 식사서빙과 설거지를 기쁨으로 섬기고 있었습니다. 선교사님들은 한국에서도 먹기 힘든 꽃게탕과 갈치구이가 있는 풍성한 한국음식 뷔페로 져니팀을 섬겨주셨습니다. 만하임의 샛별로 자라고 있는 알렉시스 형제님이 식사전 만하임 센타를 소개하였고 환영해 주었습니다. 만하임은 최근 제자 양성역사가 활발하여 이번 유럽국제수양회에 양들만 6명 초청하였고 알렉시스 형제님이 인생소감 통역 강사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그는 요하네스김 선교사님의 삶이 동역자들과 마을 사람들에게 아주 좋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어 깊이 존경하고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올가 자매님은 친구 헬렌 자매를 1년 넘게 섬기고 있었습니다. 파울리나 선교사님은 수양회를 참석하고 만하임으로 돌아가는 날 아들 예모를 낳았고 학문 정복에 고난이 많은 여호수아 선교사님은 연신 싱긍벙글이었습니다. 레베카리 선교사님은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 아주 밝고 겸손하며 기쁨이 충만한 모습으로 동역하며 좋은 직장을 얻도록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식사후 만하임 캠퍼스에 심방하였습니다. 요하네스김 선교사님은 힘찬 목소리로 만하임 센타가 2015년까지 500명 제자를 일으키는 분명한 기도제목을 제시하셨고 져니팀은 이를 위해 합심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이번 수양회에서 개인적으로 안드레아스 크라빙켈 목자님이 전하신 요8:32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과 막6:37절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말씀에 은혜 받았습니다. 저는 가끔 마음에 자유가 없고 장래 염려와 근심에 사로잡히는 이유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일대일 제자양성에 헌신하지 못하는데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귀국하여 제가 가장 열심히 해야 할 일은 매주 열두 영혼에게 생명의 말씀을 먹이는 일인 것을 깊이 새기고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독일은 어디를 보나 천국과 같았습니다. 아름다웠고 풍요하였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님들은 독일인들이 인생의 무의미와 허무에 깊이 신음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관광지에는 노인 부부들이 다정하게 손을 잡고 다니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왠지 매우 쓸쓸해 보였고 할 일없이 인생의 마지막을 소일하는 것이 불쌍해 보였습니다. 반면 6,70대가 되시는 우리 시니어 선교사님들은 아직도 캠퍼스 일대일 전선에서 양들에게 생명의 말씀으로 먹을 것을 주며 사시는 모습은 너무나 대조적이었습니다. 천국의 산소망을 가지고 캠퍼스 제자양성에 헌신하시며 국제수양회에서는 무대에 나와서 청년처럼 댄싱하시는 모습은 천국의 산소망을 가지고 사명인의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요 특권인가 새삼 깨닫게 하였습니다. 시카고 정요셉 선교사님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의 권면도 일대일에 전심전력하라는 것이었고 볼펜 3자루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제가 수양회와 져니를 통해 받은 바 크신 은혜를 헛되이 하지 않고 가을학기 힘써 일대일 12팀을 섬기므로 심령에 자유함을 충만히 누리고 위대한 믿음의 역사를 이루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한마디 : 일대일로 양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목자의 삶이 저를 자유케 할 것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8:31,32)
저는 수양회 기간 있었던 현지목자 인생소감과 유럽 각국 미션보고 및 수양회 후 투어 및 지부심방에 대해서 보고드리겠습니다.
1. 인생소감 발표
수양회 둘째날 저녁부터 유럽 각국 선교사님들의 헌신의 열매로 맺은 7명의 현지 형제 자매들의 감동적인 인생소감 발표가 있었습니다. 저녁강의로 영국 런던 UBF 폴 리지 목자님이 전한 눅 19장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 메시지 후에 발표된 이들의 소감은 잃어버린 자를 찾으시는 우리 주님의 구원의 은혜로 충만하였습니다.
첫째로 발표한 크리스토프 비어트 형제님은 하이델베르그 대학 인류학과 3학년입니다. 연희센타에서 하이델베르그로 파송되신 수잔나송 선교사님이 2003년 봄 대학에 입학 등록을 마친 그를 만나 성경공부에 초청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성경을 배우면서도 하나님 안에 있는 평강은 원하였으나 믿음의 삶은 결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곧 한 자매와의 정욕에 빠졌고 막연한 장래염려에 사로잡혀 오랫동안 방황하였습니다. 그러나 수잔나송 선교사님은 낙망치 않고 그를 기도하며 일대일로 섬겨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2005년 하이델베르그센터 봄 수양회에 참석하여 마가복음 15장을 공부하며 예수님이 자신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을 믿고 죄사함과 영생의 은혜를 얻었습니다. 이후 주일예배와 새벽기도를 꾸준히 참석하며 주위 친구들에게 예수님을 증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훈련받지 못한 제자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키우셔서 좋은 성경선생이요 선한 목자로 써주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세 번째로 발표한 토비아스 목자님은 칼스루헤 센타의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는 1978년생으로 스포츠에 뛰어나 육상 경기 대회에서 우승, 신문에 나기도 하여 이를 자랑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부끄러워하였습니다. 칼스루헤 대학 지구물리학과에 입학하였으나 정욕에 시달렸고 인생의 무의미와 공허감으로 고통했습니다. 한편으로 날마다 성경을 읽는 착한 청년처럼 보였으나 내면은 음란과 남에게 무관심한 차가운 마음을 가진 타락한 인간이었습니다. 대학 입학 전 현대의술로 고칠 수 없는 심각한 실명증 눈병을 진단받았고 의사는 긍게 대학공부를 그만두도록 권고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자신의 인생이 침몰해가는 녹슨 난파선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는 인생의 무의미로 절망할 때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은 소원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못하였고 무엇을 해야 할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때 학생식당에서 에스더김 선교사님을 만나 예배에 초청받았습니다. 제임스김 선교사님과 일대일 성경공부를 하던 중 인생의 근본 문제가 죄문제임을 깨달게 되었습니다. 3년전 처음 참석한 유럽국제수양회에서 주님의 말씀은 죄악의 안개들 속으로 비쳐내리는 찬란한 빛으로 다가왔고 엡4:17절 말씀을 통해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의 삶을 출발하였습니다. 과거 그는 지금 몇시냐고 물어볼 용기조차 없었던 소심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나 계시록 2:3-5절 말씀 앞에서 회개하였을 때 자기를 극복할 수 있었고 떨리는 다리로 두시간 동안 피싱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를 축복하시고 학문에서 크게 승리하여 졸업시험을 올A+로 통과하고 박사과정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후 잠시 열정을 잃고 음란한 소원에 시달렸으나 제임스김 선교사님이 눅13:24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말씀으로 도왔을 때 깊이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회개를 받으시고 안드레아스 형제님을 맡겨주시며 지난 1년반 동안 일대일로 양육하며 목자요 성경선생으로 쓰임받게 하여 주셨습니다. 토비아스 목자님은 제임스김 선교사님과 일대일 성경공부를 한 후 그것을 기초로 다시 일대일 교제를 만들어 안드레아스 형제님을 섬기는 선한 목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소망을 온전히 하나님 나라에 두고 오직 예수님을 섬기는 축복된 삶을 살기를 소원하였습니다.
그 외 독일 프라이부르크 센타 야로슬로브 스토르챡 자매님, 본 센타 마틴 슈렉 형제님, 마인쯔 센타 바바라 리 목자님, 시카고 센타 마이클 스타츠 형제님이 인생소감을 발표하였습니다. 이들 일곱명의 현지 목자들은 우리 선교사님들이 잃어버린 자를 찾으러 오신 예수님의 사랑과 심정으로 낙망치 않고 인내하며 섬긴 믿음의 열매들이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잃어버린 자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오는 은혜의 역사보고는 유럽 각국 캠퍼스 가운데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비젼으로 충만하게 하였습니다.
2. 유럽 각국 개척 역사보고
셋째날 마르크스 아벨 목자님이 전하신 마28장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메시지 후 세계 선교의 밤에는 유럽 각국 미션리포트 발표가 있었습니다. 먼저 영국과 아일랜드 선교보고는 중절모에 신사복을 입고 지팡이를 잡은 전형적인 영국신사의 복장을 하고 나온 런던 UBF 대런 힐트로 목자가 전하였습니다. 그는 과거 긴 파마머리에 커다란 안경을 쓰고 나팔바지를 입고 다니던 패션의 희생자였다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처음 이안 케어 목자님은 그를 만났을 때 전혀 성경을 공부할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아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노신사 한 분이 말하기를 저 사람이야말로 성경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하여 성경공부에 초청하였는데 그 분이 바로 이안 케어의 아버지인 스탠리 케어였습니다. 대런 목자는 윌리엄 캐리의 사역을 기초로 현재 영국 UBF 선교역사를 전하였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자세였습니다. 지부장 윤모세 선교사님도 항상 성경공부와 진실된 소감의 중요성을 강조하였고 리더들이 이에 순종하였을때 매주 40팀의 일대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전하였습니다. 둘째는 현지 리더양성입니다. 윤모세 목자님은 현지 리더들에게 조금씩 책임을 넘겨주어서 지금은 이안, 폴 목자들이 책임자로 성장하였습니다. 셋째는 사랑의 동역입니다. 런던 UBF는 10개국에서 온 동역자들이 함께 사역하고 있어 항상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센타청소 모임, 기도모임, 토요일 축구시합, 영국역사 공부 등 다양한 모임을 만들어 동역과 사랑을 배우고 있습니다. 윌리엄 캐리는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위대한 일을 기대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 영국 UBF의 주요 기도제목은 2025년까지 만명의 성경선생을 세우고 100개 캠퍼스를 개척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프랑스와 벨기에 선교보고는 러시아 태생인 파리 UBF 바바라 니꼴 목자가 전하였습니다. 그는 부드러운 프랑스어를 마치 러시아를 구사하듯 힘있고 절도있는 억양으로 구사하여 웃음을 자아내었습니다. 벨기에는 2004년 끌라라 김 선교사님이 학생신분으로 국적 취득이 불가능한 가운데 벨기에 국적을 얻는 믿음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클라라 선교사님은 여러 해 동안 사랑스런 딸 마리를 혼자 키우며 한국에 가 있었던 남편 갈렙 선교사와 떨어져 살아야 하는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가정을 축복하사 다시 합류하게 하셨고 클라라 선교사님이 벨기에에서 음악 선생님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라리 선교사님은 가정을 섬기기 위해 13년을 일하였습니다. 그 덕분에 여호수아리 선교사는 벨기에 역사를 위해 영적 문화적 기초를 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회계학을 공부하는데 성공하였고 2004년부터 그의 가정을 써포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라리 선교사님은 이제 영적 쉼을 갖고 매일 캠퍼스에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작년에 벨기에 선교사들은 선교 영역을 넓히기 위해 벨기에의 두번째 공식언어인 독어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벨기에 센터의 간절한 기도제목은 한 사람의 믿음의 조상을 세우는 것입니다.
포르투칼은 강렬한 태양과 맛좋은 포도주와 금빛 해변으로 유명합니다. 조상들은 17세기 세계의 절반 이상을 정복한 열강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포르투갈은 유럽 연합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로 전락했습니다. 15년전에 하나님께서는 복음 역사를 위해 마태싱 선교사 한 사람을 리스본대 유학생 선교사로 보내셨습니다. 그는 인도 지미리 선교사님의 수제자중 한 사람으로 인도 명문 델리대학 출신입니다. 그는 처음 포르투갈에 왔을 때 “개척 역사 이거 별거 아니네 몇 년 안에 큰 역사를 섬길수 있겠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로 리스본대 장학금을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성경공부하던 양들도 하나 둘씩 다 떠나갔습니다. 그는 거주할 곳도 먹을 음식도 없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인도로 돌아가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히12:2절 “믿음의 주요 또한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말씀 앞에서 회개하고 예수님을 바라보고자 결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안정된 직장과 영구체류의 길을 열어주셨을 뿐만아니라 레베카 선교사님과 믿음의 가정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2001년도에 허요한 선교사 가정을 선교 동역자로 보내어 주셨습니다. 2004년도에는 몇몇 신실한 양들을 보내어 주셨고 개척후 처음으로 허그레이스 선교사님을 통해 페르난도 형제가 유럽 국제수양회에 참석하는 큰 승리를 주셨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은 포르투칼 선교사님들에게 78개 포르투칼 대학 캠퍼스와 8개 포어권 나라들을 개척할 수 있는 비젼을 주셨습니다. 포르투갈 센터의 기도제목은 12팀 일대일 성경공부와 아브라함과 사라같은 믿음의 조상과 기도의 어미를 세워주시도록 또한 2010년까지 120명의 주일예배 참석을 이뤄주시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동구 유럽과 노르웨이 스웨덴 개척 역사보고에 이어 마지막으로 블라디미르 포인트 목자님이 터어키 개척역사를 보고하였습니다. 그는 모슬렘 국가에서 목숨을 걸고 개척역사를 섬기는 선교사답게 스피릿있고 힘찬 목소리로 보고하였습니다. 그는 본래 슬로바키아 개척 비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터어키 개척 방향이 떨어졌습니다. 그는 당시 순종하기 매우 힘든 4가지 조건이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첫째 터어키는 모슬렘 국가이고 둘째 그가 터어키에 가면 보스포러스대에서 지난 5년간 한번도 공부하지 않는 물리학을 공부해야 했으며 셋째 그의 동역자가 터어키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고 둘째 딸을 임신중이었으며 넷째 방금 우크라이나에 새집을 짓고 내부 인테리어 공사만 남았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가정을 크게 축복하시리라는 믿음으로 순종하였고 단신으로 올해 초 이스탄불에 선교사로 파송되었습니다. 난방이 되지 않는 춥고 허름한 장막을 구하여 센타로 겸용하며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많은 양들을 초청했으나 3개월간 예배에 나온 양들은 단 2명뿐 그것도 한번씩이었습니다. 신실하게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자신과 난로뿐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날마다 3명의 제자양성과 학문정복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처음에는 터어키어에다가 대입을 위해 영어까지 배워야 하므로 언어가 온통 뒤죽박죽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시고 GRE시험에서 매우 높은 점수를 허락하셨습니다. 3명의 제자를 위한 기도도 응답하시고 태머 형제가 처음으로 규칙적인 성경공부를 시작하였고 니콜라이 형제가 지난 6월 이후 매주 예배에 신실히 참석하였습니다. 그는 성경공부를 통해 운명주의로부터 자유함을 얻었고 담배와 마약도 끊었습니다. 포인트 목자님과 장막생활을 같이 하며 국제수양회도 참석하였습니다. 그외 세닷 형제를 제자로 얻었고 한명의 터키 자매를 개종하였습니다. 무엇보다 동역자와 두 딸이 왔는데 이제 동역자는 터어키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 기적이 일어났다며 감사하였습니다. 포인트 목자는 예수님을 만나기전 미치광이 록 음악가였으며 사마리탄 남자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는 터어키 청년들을 생각할 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만난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가 깨달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가 터어키에 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이 땅에서 찬양되어지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새 집을 열두 제자를 양성하는 두란노 서원이 되기를 기도한다고 하였습니다.
3. 독일 투어
은혜와 비젼이 충만한 유럽 수양회가 끝나고 각국 져니팀은 대형버스 2대에 나누어 타고 먼저 동서독 통일 후 수도가 된 베를린을 방문했습니다. 4시간의 여정 동안 말로만 듣던 아우토반을 볼 수 있었고 시속 200Km로 달리는 차도 보았습니다. 좌우로 펼쳐지는 독일은 어디를 가나 마치 달력에 있는 그림을 보는 듯 고풍스럽고 아름다웠고 깨끗하였습니다. 마치 달력만 보다 온 기분이었습니다. 주님은 져니팀들을 축복하셔서 가는 곳마다 비를 그치게 하시고 좋은 날씨를 주셨습니다. 좌우로 펼쳐지는 독일의 농촌은 드넓었고 희어져 추수하게 된 밀밭을 그냥 방치한 곳이 자주 눈에 띄었습니다. 마치 희어져 추수하게 된 독일 캠퍼스에 추수할 일군이 심히 모자라는 것을 연상케 하였습니다. 베를린과 포츠담을 거쳐 마르틴 루터가 주로 활동했던 비텐베르그로 향했습니다. 다음날 화요일 아침에는 루터가 교황청의 가혹한 핍박을 피하여 10개월간 은신하며 전심전력으로 신약성경을 번역한 바르텐부억 요새를 방문하였습니다. 루터는 그곳 2평 남짓한 좁은 방에서 골리앗과 같은 교황청의 위협에 맞서서 죽음을 무릎쓰고 영적인 투쟁을 하며 성경을 번역하였습니다. 혼신의 힘을 다하여 번역한 성경으로 인해 세상 만민들이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역사를 들으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정말 한 사람이 만군의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 불신의 시대에 도전할 때 얼마나 위대한 역사를 이룰 수 있는가 볼 수 있었습니다.
4. 은혜 충만한 지부심방
감동적인 마르틴 루터 유적 답사를 마치고 연희 져니팀들은 고대하던 개척센터 방문길에 올랐습니다. 5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쾰른 센타에 방문하였을 때 선교사님들은 풍성한 한국음식으로 저녁 뷔페를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다음날 아침 쾰른 2부 홀에서 한국 져니팀들이 영어로 인생소감을 발표하였고 안드레아스 크라빙켈 목자님이 쾰른 2부 소개하고 기도제목을 말씀하셨습니다. 쾰른2부는 현재 같은 위치에 있는 쾰른 사대와 쾰른 임상교육대를 개척하고 있고 각각 4,000명의 학생들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가운데 20팀의 일대일과 12명의 학생들이 예배 참석, 12명의 사도와 12명의 기도의 어미가 서도록 또 캠퍼스 근처에 합당한 바이블센타를 구하도록 기도제목을 제시하였습니다. 합심기도 후에 지미리 마리아리 선교사님과 함께 쾰른대와 쾰른사대 캠퍼스를 심방하고 기도하였습니다. 이어 칼스루헤를 심방하였습니다. 마르쿠스 선교사님과 직장일로 바쁘신 유다니엘 선교사님이 이틀씩이나 휴가를 내어 져니팀을 자가용으로 태워다 주셨습니다. 아름다운 코브렌츠와 로렐라이 언덕을 거쳐 때로 시속 180Km를 달리며 아름다운 도시 칼스루헤에 도착했을 때 선교사님들은 한 유스호스텔의 조그만 강당을 빌려놓았고 야외 바베큐 한식 부페로 풍성한 저녁을 섬겨주셨습니다. 하이델베르그 만하임에서 오신 선교사님들과 포르투갈 선교사님들이 한국 져니팀들과 교제하고 인생소감을 듣기 위해 다 모여있었습니다. 토비아스 목자님과 그의 양인 안드레아스 형제님이 식탁을 펴고 수저와 음식을 나르는 일을 적극적으로 섬기는 모습이 아름다웠고 감사하였습니다. 풍성한 식사 후에 토비야스 목자님의 사회로 한국 져니팀들이 영어로 인생소감을 발표하였습니다. 2년반 만에 노동허가서를 얻어 일약 유명해진 강그레이스 선교사님과 아빠가 수양회 가있는 동안 주일예배 메시지를 섬긴 주니어 제임스와 요한이 아름다운 특주를 섬겼습니다. 이튿날 새벽 선교사님들과 축구펠로쉽을 가진 후 칼스루헤 대학을 심방하고 합심 기도하였습니다. 과거 제후가 쓰던 성 전체를 캠퍼스로 쓰고 있었는데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칼스루헤 센타는 현재 제임스김 에스더김 선교사님 가정을 센타로 쓰고 있는데 새 센타 구입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또 토비야스 목자님이 말씀의 종으로 성장하고 매주 12팀 일대일과 12명 예배참석 12제자를 세우는 기도제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독일에 온 후로 기쁨과 감사가 충만한 백다니엘 선교사님이 헌신적으로 져니팀을 섬겨주셨고 내년 대학입학을 위해 기도를 부탁하셨습니다.
이어 유명한 하이델베르그 성을 거쳐 하이델베르그 센타를 방문하였습니다. 환영나오신 웨슬레송 수잔나송 토마스 정 카리스정 마르쿠스 아벨 마리아 아벨 선교사님들이 져니팀을 뜨겁게 영접하여 주셨습니다. 기도와 기념사진을 찍은 후 곧 만하임 센타로 갔습니다. 요하네스김 헬렌김 여호수아 H김 리베카리 선교사님이 함박웃음으로 져니팀을 영접하였습니다. 소망스러운 만하임대 4학년 올가 자매님, 미국에서 온 마이클 형제님이 식사서빙과 설거지를 기쁨으로 섬기고 있었습니다. 선교사님들은 한국에서도 먹기 힘든 꽃게탕과 갈치구이가 있는 풍성한 한국음식 뷔페로 져니팀을 섬겨주셨습니다. 만하임의 샛별로 자라고 있는 알렉시스 형제님이 식사전 만하임 센타를 소개하였고 환영해 주었습니다. 만하임은 최근 제자 양성역사가 활발하여 이번 유럽국제수양회에 양들만 6명 초청하였고 알렉시스 형제님이 인생소감 통역 강사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그는 요하네스김 선교사님의 삶이 동역자들과 마을 사람들에게 아주 좋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어 깊이 존경하고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올가 자매님은 친구 헬렌 자매를 1년 넘게 섬기고 있었습니다. 파울리나 선교사님은 수양회를 참석하고 만하임으로 돌아가는 날 아들 예모를 낳았고 학문 정복에 고난이 많은 여호수아 선교사님은 연신 싱긍벙글이었습니다. 레베카리 선교사님은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 아주 밝고 겸손하며 기쁨이 충만한 모습으로 동역하며 좋은 직장을 얻도록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식사후 만하임 캠퍼스에 심방하였습니다. 요하네스김 선교사님은 힘찬 목소리로 만하임 센타가 2015년까지 500명 제자를 일으키는 분명한 기도제목을 제시하셨고 져니팀은 이를 위해 합심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이번 수양회에서 개인적으로 안드레아스 크라빙켈 목자님이 전하신 요8:32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과 막6:37절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말씀에 은혜 받았습니다. 저는 가끔 마음에 자유가 없고 장래 염려와 근심에 사로잡히는 이유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일대일 제자양성에 헌신하지 못하는데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귀국하여 제가 가장 열심히 해야 할 일은 매주 열두 영혼에게 생명의 말씀을 먹이는 일인 것을 깊이 새기고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독일은 어디를 보나 천국과 같았습니다. 아름다웠고 풍요하였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님들은 독일인들이 인생의 무의미와 허무에 깊이 신음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관광지에는 노인 부부들이 다정하게 손을 잡고 다니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왠지 매우 쓸쓸해 보였고 할 일없이 인생의 마지막을 소일하는 것이 불쌍해 보였습니다. 반면 6,70대가 되시는 우리 시니어 선교사님들은 아직도 캠퍼스 일대일 전선에서 양들에게 생명의 말씀으로 먹을 것을 주며 사시는 모습은 너무나 대조적이었습니다. 천국의 산소망을 가지고 캠퍼스 제자양성에 헌신하시며 국제수양회에서는 무대에 나와서 청년처럼 댄싱하시는 모습은 천국의 산소망을 가지고 사명인의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요 특권인가 새삼 깨닫게 하였습니다. 시카고 정요셉 선교사님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의 권면도 일대일에 전심전력하라는 것이었고 볼펜 3자루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제가 수양회와 져니를 통해 받은 바 크신 은혜를 헛되이 하지 않고 가을학기 힘써 일대일 12팀을 섬기므로 심령에 자유함을 충만히 누리고 위대한 믿음의 역사를 이루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한마디 : 일대일로 양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목자의 삶이 저를 자유케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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