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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낄(kiel) 오베드로 선교사님 선교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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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엘리야
댓글 0건 조회 2,655회 작성일 07-07-23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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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 치는 목동에서 사람 낚는 목자로

마 16:18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이 시간 저의 인생에 임하신 몇 가지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의 역사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제게 참 자유와 생명을 주셨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이북에서 사셨는데 해방 후 들어온 공산당 학정에 못 이겨 남으로 도망쳐 나와 전국을 해매이시다가 낙동강 하구에 정착하셨습니다. 저는 1958년 6월 1일 그곳 부산시 동래군 사상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당시 저의 집은 낙동강 둑 안에 있는 섬에 있었고, 저는 그곳 물에서 자주 놀고 조개 잡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비가 조금만 많이 와서 물이 방안까지 들어와 솥단지가 물에 둥둥 떠다니는 진풍경이 벌어지곤 하였습니다. 그러면 물난리를 피해 근처 초등학교로 피신하여 강냉이 죽 타먹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7살 때 저희 집은 산간지방으로 이사하였습니다. 그곳은 마을에서 좀 떨어져 있었고, 3집이 있었는데, 학교 길은 매우 멀었습니다. 학교가다 불장난을 하기도 하고, 땡땡이 칠 때도 있었습니다. 저희들은 그곳에서 10년을 살았는데 이기간 동안 저는 염소와 소를 먹였습니다. 아침에 일찍 산에 염소를 올려다 놓고,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고 내려와 학교에 갔습니다. 학교에 다녀와서는 다시 산에 올라가 염소를 치는 염소 목동 노릇을 하였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많은 농사짓기가 너무 힘들어 다 팔고 그곳 읍으로 내려와 이사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울산으로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 시절 인생이 무엇인가 생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대학가면 철학공부를 하고자 하였습니다. 저는 돈 버는 것을 배우기보다 먼저 인생의 본질을 배우고 인생문제를 해결함 받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1977년 충남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하여 공부하였습니다. 그러나 철학은 저에게 인생의 본질 즉, ‘사람이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가는가‘ 의 질문을 해결해 주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저의 죄 문제와 인생의 허무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저의 죄 문제는 청년의 정욕이었습니다. 저는 깨끗한 마음을 갖기를 원했지만 저의 마음은 온갖 정욕과 더러움으로 들 끌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죽으면 그만인데 하는 생각이 저를 무기력하게 하였고, 인생무상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저는 제 마음을 청결케 해보려고 목욕 재개하고 수도한다고 산에 올라가 몇 시간씩 묵상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도 제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죽느니만 못하다 하여 신탄진강에서 자살할 생각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저를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대학1년 때 같은 과 친구였던 오요한 목자가 센터에 탁구 치러 가자고 하여 UBF 대전센터와 관계성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저의 고집과 세상 정욕이 저의 영적 성장을 막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주님은 역사 하시사 출애굽기 공부하던 중 세상을 창조하신 성경의 하나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역사의 하나님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이 뒤로 성경의 하나님은 저의 주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제가 성경의 인격적인 하나님을 제 마음에 영접하자, 저의 쭉정이 같이 흩날리던 영혼이 참 안식을 찾는 기분이었습니다. 제 영혼은 더 이상 방황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성경의 하나님을 저의 하나님으로 영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저는 만성 두통증세에서 나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머리아픈것 때문에 저는 약을 많이 먹었는데 그 뒤로 더 이상 약을 먹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주 하나님을 섬기고자 결단하고 센터 청지기 노릇도 하였습니다. 마음에 여전히 일어나는 정욕의 세력은 죽으면 하님께 간다는 생각 때문에 극기의 힘으로 이기고자 하였습니다. 허무의 문제는 영원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마음에 여전히 일어나는 저의 정욕의 세력에서는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갈등이 1년이 계속되었고, 참았지만, 저는 제 마음에 해방과 자유가 없었습니다. 저는 이런 내면적 갈등을 겪느니 화끈하게 죄짓고 차라리 지옥가는 것이 오히려 낫지 않을까 생각까지 하였습니다. 어쨌든 일단 UBF 센터를 떠나야 자유로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당장 갈 곳도 정해놓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 센터에 있는 짐을 싸들고 도서관으로 들고 갔습니다. 도서관에 앉아 있으니 허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을 통해 참된 인간이 되고 참 자유와 해방을 누리고자 했는데 오히려 마음에 갈등만 생기고 그나마 이제 보따리 하나들고 도망쳐 나온 생각을 하니 그동안의 모든 일이 헛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성경을 읽고 이제 성경 읽는 것도 그만 두고자 하였습니다. 이때 읽은 말씀이 요한복음 5장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를 찾아 불쌍히 여기시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시며 그를 낫게 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던 중 하나님은 저의 눈을 띄워 하나님 앞에 제가 누구인가 보게 하셨습니다. 저는 38년 된 병자와 똑같은 자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는 그의 육신의 병으로 무기력하게 누워있고 나는 나의 죄의 병으로 무기력하게 누워있었습니다. 그도 그의 병을 어찌할 수 없었고, 저도 저의 병을 어찌할 수 없어 누워있는 자였습니다. 이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의 바로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찾아 낫게 하셨고, 이 예수님이 또 저를 낫게 하시고자 2000년이 지난 지금 이 땅에 오사 역사하고 계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저의 힘으로 좀 거룩해 지려고 노력해보았지만 그러나 저는 마음도 뜻도 죄에 병들어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자였습니다. 이런 38년 된 병자를 예수님은 찾아 오시사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하시며, 제가 해결할 수 없었던 저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때야 비로소 왜 하나님 믿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그의 아들 예수님이 이 죄 많은 땅에 오셔서 십자가 못 박혀 죽으셔야 했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저의 죄 때문에 저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려고 이 땅에 오사 그의 고귀한 피를 흘리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내가 해결할 수 없었던 저의 죄 문제를 하나님이 아시고 당신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보내 해결해 주셨습니다. 제가 할 일은 단순히 오직 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이 영적 사실을 알았을 때 참자유와 생명이 강같이 저 안에 흐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저는 날아갈듯이 기뻤고, 제가 그토록 갈망하고 찾고자 했던 것을 찾았습니다. 저는 이제 당장 죽어도 원한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제가 UBF센터를 떠날 아무런 이유가 없었습니다. 저는 아무도 몰래 들고 나왔던 보따리를 다시 아무도 모르게 가져다 놓았습니다. 누구도 이일을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저의 변화된 모습을 눈치 채기 시작했습니다. 나갈 때는 죄와 율법의 억눌린 자였지만 해방된 자로 돌아왔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제게 인생 방향을 주셨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대학원 1년을 하다가 저는 공병대 졸병으로 전방에 배치 받아 훈련을 받았습니다. 훈련을 참으로 직싸게 받았습니다. 거기다 날마다 일과 후 세면장 가서 터지고 훈련 때 마다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터지는 것이 하루 일과였습니다. 자유가 없다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저의 간절한 바람은 초가산간에 살더라도 자유함 누리고 사는 것이었습니다. 학수고대하던 전역의 날이 왔습니다. 군 정문을 나올 때 얼마나 기뻤던지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새벽녘에 부산역에서 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때 제 마음은 전역의 기쁨은 어느새 사라지고 그보다 장래 방향으로 마음에 짓눌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사는 것은 분명하지만 어떻게 믿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에 영적 눌림이 있어 역전 앞을 서성이다가 새벽 기도하는 한 교회에 들어가 앉았습니다. 제 마음에는 당시 두 가지 방향이 서로 갈등하고 있었습니다. 직장생활을 우선하며 목자생활을 뒤로 할 것인가? 아니면 목자생활을 우선하며 직장생활을 뒤로 할 것인가? 직장생활 우선하며 목자생활 뒤로하자니 하나님 앞에 받은바 은혜가 너무 커서 신앙양심에 부끄러웠고, 목자생활 우선하며 직장생활 뒤로하자니 결혼과 가정생활은 물론 나 하나 먹는 것조차 힘들 것 같았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엎드려 심히 탄식하고 한숨만 푹푹 쉬며 주여 주여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먹을 것만 보장된다면 주님만 섬기고자 하는 결단까지 하였습니다. 그래도 제 마음에 신앙양심이 개운치 않았습니다. 저의 신앙양심은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을 지라도 주님 섬기기를 결단하라고 촉구하였습니다. 저는 저의 양심을 따라 주님 제가 설령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목자생활 우선하겠다고 결단하였습니다. 이렇게 하고 나니 마음에 짓눌림은 사라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된 시원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마음의 걱정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영웅 같은 결단을 했지만 그러다 굶어죽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과 그래도 나는 괜찮지만 혹시 내게 자식들이 있어 이들을 돌보지 못한다면 그 비참함은 어디에 비유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자 엎드린 무릎은 저려 오지만 도저히 기도의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계속 엎드려 주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하며 눈물을 뚝뚝 흘리며 기도하는데 이때 내안에 성령의 한 말씀이 저를 부르시며, 오베드로야 오베드로야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를 사랑하여 나의 귀한 독생자도 아끼지 않고, 너를 위해 죽는데 까지 내어 주었는데 그까짓 빵같은 것을 아끼겠느냐? 그러시며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는 말씀과 로마서 8장 42절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하는 말씀으로 제게 약속을 주셨습니다. 모든 것을 주시겠다는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자 제 모든 걱정은 눈 녹듯 사라지고 마음에 감사와 확신이 들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저는 하나님 사라계신 우리 주님께 눈물로 감사하고 UBF센터로 소망과 기쁨가운데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 저는 직장에 있을 때도 있었고, 없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 하나님은 지금까지 저를 아무 부족함이 없이 좋은 것으로 먹이고 입히십니다. 또 독일 약사를 부인으로 주사 독일의 좋은 보약으로 먹이십니다. 아이들은 또 최고의 교육을 누리게 하십니다. 그 약속의 말씀을 따라 신실하게 저를 돌보시는 목자 되신 우리 주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셋째, 제게 역사적인 사명을 주신 예수님
제가 1984년 군 제대 후 하나님의 은혜로 한 달간 한양센터에 머물면서 84년 한양센터 여름수양회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때 제 마음 가운데 아직 남아있는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첫 자리에 두고 하나님 위해 사는 목자 생활한다는 것은 결단했지만 구체적으로 무슨 사명인가는 막연하고 불분명 했습니다. 다만 하나님께 저의 삶을 맡긴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저는 평생 하나님 전의 청지기로라도 살기를 원했습니다. 수양회 기간 동안 우연히 마태복음 16장 18절 읽는 중 너는 베드로라 하시는 주님의 말씀이 저를 지적하여 부르시는 주의 말씀처럼 제 귀에 쏙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말씀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저를 향하신 뜻이 무엇인가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저의 믿음의 반석위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할 일은 이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는 내 뜻이 아니라 주의 뜻이었습니다. 다만 제가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은 제 삶을 순간순간 주님께 드리며 이 뜻을 이루고자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제게 소망과 비전을 주었습니다. 이 말씀이 저의 마음가운데 임하신 후 저는 주께서 나를 어떻게 이 말씀을 이루고자 인도하시는가 생각하며 마음이 설레게 되었습니다. 그 뒤 저는 고 이사무엘 선교사님 앞에서 인생요절 말씀을 발표하고 전요한 박사님 초청으로 풀타임 목자가 되는 기도 가운데 서울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종로 센터와 아남센터에서 목자 생활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과정도 저는 주께서 제게 주신 부르심의 소망을 이루는 한 단계라고 생각하고 마음에 기대가 되었습니다. 그 뒤 저는 선교사로 파송 받아 독일로 왔습니다. 킬 개척시절 숱한 어려움에 부딪히며 소망과 선교의 비전이 사라질 뻔 한 순간에도 이 말씀에 항상 제안에 살아서 저를 인도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자신의 교회 반석으로 삼겠다는데 내가 어찌 그 뜻을 거역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순간순간 저는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를 통해 제가 깨닫는 것은 한 말씀을 깊이 마음에 영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알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이 부르심의 말씀을 따라 계속해서 저를 인도하시고 주의 교회를 이루는데 저를 쓰실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넷째, 예수님은 제게 경건한 믿음의 여인을 동역자로 주셨습니다.
제 한나 동역자는 19살 나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6어린동생을 돌보고자 독일의 간호원으로 돈 벌러 와야 했습니다. 그는 아버지를 잃은 설움과 외국노동자 생활의 어려움에 날마다 울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가난 때문에 못 이룬 공부의 꿈을 이루고자 계속남아 일했습니다. 낮에는 근무하며 밤에는 야간 고등학교 다녀 대학입학자격을 땄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약사공부를 할 때는 낮으로 공부하고 밤으로 야근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다보니 아까운 청춘다가고 나이 36살의 노처녀가 되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그의 한 친구가 독일의 UBF 선교사로 와서 그를 말씀 공부에 초청하였습니다. 20년 전 그 당시 36살에 결혼하러 한국에 온다니 전요한 목자님께서는 근심어린 소리로 나이가 지긋한 학사가 있는 센터는 자기에게 연락을 달라고 광고를 하였습니다. 저도 이 광고를 들었지만 나와는 관계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저는 센터 청소를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제 마음에 세미한 하나님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오베드로야 너라면 이 노처녀 선교사와 결혼하겠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황당하여 변명하기를 나는 알지도 보지도 못했고 나이차도 많고 그녀가 무슨 과거가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어쩌고저쩌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제 안에 신앙양심은 저를 촉구하기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결혼하겠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겠노라고 결단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 일진데 제가 어찌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그 뒤 한나 선교사는 비행기 타고 한국에 왔습니다. 목자님들은 목자심정에 사방팔방으로 알아보고 몇몇 형제들을 소개시켰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하 일이 잘 되어가는가보다 그 때 그 밤의 하나님 앞에서의 결단은 하나님이 내 믿음을 떠 보시려고 하는 시험이었구나 생각하고 마음을 놓았습니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소개받은 형제들은 인턴목자라도 다 도망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한나 동역자를 저의 동역자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저는 기가차서 말이 안 나왔습니다. 기가 차고 말이 안 나왔다는 것은 제가 낭패에 빠졌다는 것이 아니라 저는 하나님의 오묘하고 놀라우신 손길에 감탄하고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구나 하는 것에 너무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제 길을 인도하시고 부인까지도 직접 인도하시는 것을 깨닫고 제가 놀라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아름답고 독일에서까지 최고등교육을 받은 최고의 지성인을 동역자로 붙여 주셨습니다. 이런 귀한 믿음의 보배는 오직 믿음의 사람만이 차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희들은 큰 축복가운데 결혼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이를 통해 큰 은혜를 덧입었습니다.

다섯째, 예수님은 믿음과 사랑의 가정을 주셨습니다.
많은 믿음의 가정이 그러하겠지만 믿음의 가정은 믿음의 가정대로 극복해야할 문제들이 있습니다. 저와 한나 선교사는 다른 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저희들은 성격도 다르고 나이차도 있고, 살아온 경륜도 다릅니다. 거기에다가 한나 선교사는 한국과 독일의 일류 교육을 받은 일류 출신이요, 저는 염소나 몰며 만화책과 무협지 읽기를 좋아하던 3류 출신입니다. 그는 마음이 청결하고 아름다운데 저는 그러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아니었으며, 제가 어찌 감히 그런 분을 동역자로 맞이할 수 있겠습니까? 거기다 저는 제가 쾰른 센터에 있을 때 학교와 직장 다니는 것 그리고 센터 중심으로 생활을 하니 저는 마치 아침저녁으로 밥만 먹고 잠만 자는 하숙생 같았습니다. 이런 생활에 저의 동역자는 비록 참을성이 많은 분이지만 마음에 알게 모르게 마음에 불만이 생기고 한계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남편의 사랑 못 받는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다 제가 직장을 잡는 계기로 쾰른에서 킬로 개척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저희들은 몇 년간 오직 둘이서 예배를 보아야만 했습니다. 그 때야 비로소 저희들은 함께 많은 시간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나 동역자가 인간적으로 아주 훌륭한 사람이지만 아내는 아내다라는 것을 깨닫고 부부로만나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랑하기로 결단 하였습니다. 적극적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사랑의 표현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처음에는 쑥스러웠지만 믿음으로 사랑한다고 날마다 고백하였습니다. 어떤 때는 하는 짓이 마음에 안들어 속이 비틀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믿음으로 감정을 이기고 예쁘다고 하고 손도 잡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랑하고 싶을 때나 사랑하기 덤덤할 때나 제 동역자를 항상 사랑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사랑의 고백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 동역자는 제가 사랑한다는 말이 진짜인지 가까인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도 싫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면 저는 당연히 진짜라고 말합니다. 믿음의 사랑은 정말 찐짜입니다. 여기에 믿음의 사랑이 세상의 사랑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행하는 연애 사랑은 달 때는 삼키지만 쓸 때는 내뱉지요 연애 감정이 사라지면 사랑도 끝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랑은 사랑의 감정이 없어도 믿음으로 사랑하면 놀라운 믿음의 사랑이 강물 흐르듯 생깁니다. 그래서 더 힘써 사랑하게 됩니다. 저희 가정을 믿음의 사랑으로 행복하게 하신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를 본 이방 목자들도 UBF 선교사들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합니다. 마크스 목자는 UBF선교사라면 눈 딱감고 결혼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눈 딱 감고 마리아 선교사와 결혼하여 지금현재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여섯째, 예수님은 제게 학업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제가 독일에 갔을 때 다른 형제 선교사들은 전부 대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했지만 저는 사도 바울처럼 텐트메이커로 살고자 대학에 안 들어가고 독일어 배운 뒤 컴퓨터 프로그램 직업전수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독일회사에서 직장을 얻어 10년간 근무하였습니다. 직장4년째 회사가 둘로 갈라지는 바람에 근무시간을 40시간에서 25시간으로 줄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돈으로는 살기가 힘들었는데 하나님께서 마침 한나 동역자에게 좋은 파타임 잡을 주셔서 살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저는 이 주어진 남은 시간을 독일 선교위해 대학 공부하고자 하였습니다. 신학 공부를 하고자 하니 공부할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은혜로 7년에 걸쳐 졸업하고 현재는 함부르크 대학에서 박사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저는 원래 공부할 체질이 아닌데 믿음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는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은혜를 주셨는지 모릅니다. 돌이켜 볼 때 저는 학생시절에 공부와 관계하여 3번 믿음의 결단을 한 적이 있습니다. 대학재중 군대 갔다 오려고 했는데 하나님 역사에 필요하니 연기하면 좋겠다고 해서 연기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곧바로 군대 가야 되는데 학생회 역사에 나의 도움이 필요하니 연장하면 좋을 것 같다고 하여 저는 계획이 없었지만 대학원 등록하여 1년 연기할 수 있었습니다. 군 재대 후 대학원 복학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 때 전요한 박사님 통해 인턴 목자로 불러 주셨습니다. 저는 이를 계기로 대학원 등록금을 감사헌금으로 몽땅 드리고 UBF 대학에 입학하고자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으로 저의 공부는 끝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볼 때 하나님은 제 이러한 적은 결단을 보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저희들의 하나님 역사를 위한 조그마한 믿음의 결단도 잊지 않으시고 백배로 갚으시는 하나님을 배우게 됩니다. 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독일은 세계 강국입니다. 독일은 세계를 2번이나 정복하려고 세계전쟁을 일으킨 능력 있는 게르만 민족입니다. 이들을 약소국의 선교사가 제자삼아 복음화 시킨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독일 선교가 세계에서 제일 어려운 곳이 아닌가 말합니다. 이들을 제자삼아 복음화 시키기 위해서는 정말 저희 선교사가 위대한 말씀 선생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저는 독일 선교가 너무 힘들어 미국이나 다른 나라로 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바로 여기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어렵기 때문에 하나님은 저를 독일로 보내시고 여러모로 훈련시키시고 강하게 하십니다. 제 기도제목은 12제자를 세워 북독일 12지구를 개척하는 것입니다. 현재 개척하고 있는 킬에는 한 가정 독일목자 가정과 한 자매 박사목자가 중심 지키며 몇 명의 목동이 자라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그 옆에 있는 함부르크대학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함부르크는 독일에서 2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내년부터는 이곳에 바이블센터를 얻어서 적극적으로 이곳을 개척하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복음의 일꾼들을 보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세계선교를 이루는 데는 일꾼을 필요로 하는데 특히 믿음으로 무엇이나 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와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를 축복하십니다. 믿음의 사람은 결혼도 믿음으로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믿음으로 사랑도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역경을 믿음으로 이겨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믿음의 몇 사람들을 독일 함부르크 개척역사에 보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한마디 :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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